회개라고 하는 것을 사람들이 많이 오해하고 있습니다.
회개라고 하는 것을 사람들이 많이 오해하고 있습니다.
거의 대부분이 성경에서의 회개라는 것은 교회 나와서 잘못한 것을 하나님 내가 잘못했습니다.
그러면 그것을 회개로 생각을 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자백입니다.
자백이라는 것과 회개라는 것을 잘 구분을 하셔야 됩니다.
자백을 하고 그 다음에 돌이켜서 그 길을 걸어가지 아니하는 것, 이것이 바로 회개입니다.
이 회개는 그냥 생각으로 내가 이렇게 해야 되겠다 가 아니고 마음이 바뀌어야 비로써 그 회개가 가능한 것입니다.
머리로는 또 하나님 앞에 빌고 다시 안 하겠습니다.
하지만 마음이 새롭게 되지 아니하면 절대로 회개할 수가 없습니다. 가던 길을 돌이켜서 반대의 방향으로 돌아갈 수 없다 그 말이지요.
회개라는 말이 희랍어 성경에서는 <메타노이아> 이렇게 말하는데 <메타>라는 말은 바꾼다는 뜻이고,
<노이아>라는 말은 마음이라는 뜻입니다.
그래서 그 마음을 바꿔서 새롭게 하지 아니하고서는 회개를 할 수 없는 겁니다.
그런데 사람들이 일반적으로 잘못을 하고 교회 나와서 하나님 내가 잘못했습니다 하고 통곡을 하면 그것이 회개로 생각을 해버립니다.
그건 어디까지나 자백의 범주에 들어가는 것입니다.
자백이라고 하는 것과 회개라는 것을 구분을 못하고 그냥 자백하는 걸 회개라고 생각을 하는 경우가 많이 있는데
이런 문제를 혼돈하지 마시고 회개의 길을 걸어가야 됩니다.
회개의 길을 걸어간다 하는 것은 마음을 완전히 새롭게 해서 바꿔서 전혀 다른 길을 걸어가는 겁니다.
동쪽을 향해 가던 사람이 이거 잘못되었구나 이걸 깨달아 알고 정반대 서쪽을 향해 가는 것 이것이 바로 회개.
마음이 바뀌어서 새롭게 되어서 전혀 다른 길을 가는 것입니다.
마음이 바뀌었다는 것은 좋아하는 것이 바뀌고
그 추구하는 것이 바뀌고
목적이 바뀌고 이렇게 되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지요.
그냥 마음이 바뀌었는데 옛날 짓을 그대로 한다면은 그것은 마음이 바뀐 것이 아닙니다.
그래서 회개라고 하는 것을 자백이라고 하는 말과 잘 구분하시고 이해를 하셔야 됩니다.
로마서 12장1절 여기 회개하는 것이 뭔가 하는 게 나옵니다. .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사로 드리라 이는 너희의 드릴 영적 예배니라-
네 몸을 하나님께 산 제사로 드리라 하는 말은
예배당 와서 뭐를 하는 것만 하나님께 드리는 걸로 생각을 해서는 안 되고,
우리의 삶이 예배당에서나 예배당 밖에서나 가정에서나 사회에서나 우리의 삶이 100% 진리 안에 거하지 아니하면 이건 불가능한 겁니다.
몸을 하나님께 산 제사로 드릴 수가 없지요.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산 제사>.
어떤 게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산 제사가 되느냐?
이걸 오해를 해 가지고 많은 문제들이 벌어집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산 제사를 드리기 위해서 충성 봉사하고 야단을 치는데 이래 가지고는 되는 일 아니라 그 말이지요.
그럼 어떻게 해야 되느냐?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이 세대를 본받지 말아라.
하나님께 산 제사로 드리려면 어떻게 해야 되냐?
이 세대를 본받지 말아라- 그 말입니다.
이 세대를 본받지 말아라. 너무 엄청난 말씀이지요.
어떻게 이 세대를 본받지 않을 수 있어요.
자기도 모르게 물들어 갑니다.
자기도 모르게 물들어 가는데 어떻게 이 세대를 본받지 않을 수가 있느냐 말입니다.
말씀 안에서 깨어 있지 아니하면 불가능한 거지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아까 뭐가 마음을 새롭게 하는 거라고 했지요?
회개라는 건 바로 마음을 새롭게 하지 않으면 불가능한 것이다 이런 말입니다.
이 세대를 본받아 갈 수 있었는데 이제는 이 세대를 본받지 않을 수 있는 근본적인 원동력이 어디에서 나왔느냐?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이게 바로 회개라는 단어의 정의를 내린 거지요.
이게 회개라고 하는 겁니다
정말로 회개를 한 사람. 정말로 마음을 새롭게 해서 변화를 받고 이 세대를 본받지 아니한 사람.
그 사람은 어떻게 사느냐?
다윗이 우리아의 아내를 빼앗아 자기 아내를 삼았는데
그 남편을 죽이고 밧세바를 자기 아내로 삼았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네가 잘못했으니 아들이 죽을 것이다.
그렇게 책망한 다음에 아이가 병들어 가지고 일주일을 앓습니다.
그러니까 일주일 동안 그 아이 때문에 울고불고 다윗이 밥도 안 먹고 몸부림을 칩니다.
그 몸부림을 치는 과정이 시편 22편 51편 나오는데
그런데 아이가 숨이 딱 떨어졌습니다.
아이가 죽은 걸 보고 그 신하들이 야! 큰일났다!
아이가 병들었을 때도 임금님이 저렇게 몸부림을 치는데 아이가 죽었다고 고하면은 어떻게 될 거냐?
이것 죽었다고도 못하고 안 죽었다고도 못하고 어떻게 하냐?
큰일났구나 신하들끼리 수군수군 합니다.
눈치 빠른 다윗이 척 보니까 신하들의 눈치가 다르거든.
아이가 죽었느냐? 대답 안 할 수가 없으니까 네! 죽었습니다.
정말로 죽었냐? 네 죽었습니다.
목욕물 데워라. 목욕해야겠다.
일주일 동안 목욕 안 했으니까. 목욕하고 새 옷 가져와라.
새 옷 갈아입고. 상 차려라. 밥 먹게. 그래서 상 차렸습니다
보통 이 세대 사람과는 다릅니다.
무슨 말이냐?
저는 옛날에 이 사건이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이 구약의 그림자가 오늘날 우리에게 무슨 말씀을
하고 계신지 도무지....
우리들 자식이 죽을 때가 많습니다.
자식이라고 하니까 집에서 밥 먹고 학교 다니는 자식이 아니라.
우리들이 하고 있는 그 어떤 그것 뭐가 있지 않습니까?
그런 것이 죽을 때가 있습니다.
죽기 전까지는 마음이 초조하고 불안하고 조금이라도 어떻게 살아봤으면 좋겠다고 하지요.
그래서 머리를 쓰고 괴로워하고 하나님 저를 좀 살려주세요!
하나님 뜻대로 하시옵소서는 한쪽 구석에 있고.
좀 우리를 살려주세요-가 우리의 기도지요?
아이가 죽는다니까 집에 젖먹이 키우는 것 그것 죽는 것만 생각하지요.
우리 생활 속에서 세상을 사랑하며 따라가며 그걸 어떻게 만들어 볼까 살려볼까?
몸부림을 치는데 하나님께서 생명을 털거덕 데려갔습니다.
그때에 우리의 반응은 어떠냐?
보통 사람 같으면 식음을 전폐하고 밥 안 먹습니다. 그때부터.
그때부터 마음이 불편하고 그때부터 괴롭고 답답하고 절망이 오고 몸부림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은혜를 입고 마음을 새롭게 한 사람들은 아이가 죽었냐? 네 죽었습니다.
그러면 밥 차려라 밥 먹자.
밥 먹을 때 마음이 편해서 밥 먹자는 겁니까?
속이 끓어 죽겠는데 밥이 넘어갑니까, 안 넘어갑니까?
드라마 같은 데 보면. 죽을 쑤어 와서 죽 좀 잡수시옵소서 하니까 내가 죽 먹게 생겼냐?
지금 속 끓어 죽겠는데 죽 먹게 생겼냐고 죽사발을 엎어버리지요. ^^
그러나 마음이 편하니까 이제는 다 끝났다.
끝난 걸을 내가 어찌하랴?
여기서 완전히 하나님께 의탁하고 맡기고 주님의 뜻대로 하시옵소서
주님의 뜻이 이루어졌으니 내가 거기에 무슨 말을 하랴?
지금까지는 주님의 뜻이 어떤 것인지 몰랐어요.
아이가 사는 것인지 죽는 것인지 몰라서 혹시 하나님이 살려주실지 모르니까 살려달라고 했지만
이제는 하나님의 뜻이 결정 났어요
그러니까 밥 먹어야 되는 겁니다
그런데 우리는 어떻습니까?...
그런 아이가 죽는 얘기가 우리 생활 속에서 무수히 벌어집니다.
아이가 죽기 전에까지는 살겠지 살겠지 하다가 턱 죽으면 그때부터 밥 안 먹는 사람이 누구지요?
끝났다. 그럼 그때부터 밥 먹어야 합니다.
얘기가 통하는지 모르겠습니다….^^
약할때 강함되시네 - 소리엘